statement (2022)

잠수부와 물고기가 마주 보며 서 있다. 지도를 따라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그들을 반기는 것은 황폐해진 땅과 버려진 배 한 척뿐이었다.

물고기가 잠수부를 올려다본다. ‘…이제 어쩌면 좋지?’

이제 어쩌면 좋지?
작품 속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말인 동시에 스스로 묻는 작업의 출발점이 된 질문이다. 무던히 노력을 기울여 일에 몰두해도, 특히 결과를 지향하는 근래에 나는 남들보다 점점 뒤처지는 느낌을 떨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와 세상의 격차는 막연한 낙관과 노력만으로는 좁히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어쩌면 좋지? 마땅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애써 대답을 미룬다. 머리 아픈 현실 속 좌절과 고민은 한편으로 제쳐놓고 이제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에 몰입한다. 

 

빈티지 로봇과 녹슨 헬멧
과거 전시장에서 마주한 세피아 톤의 빈티지 로봇은 SF 대체 역사물의 한 장르인 ‘스팀펑크’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고, 줄곧 구릿빛의 낡고 녹슨 사물의 사진을 수집하며 이를 작업에 녹여내기 시작했다. 작품 내 화면에는 옛 복장의 잠수부가 등장한다. 고목이 자리하는 해변에는 멀리 아폴로 11호의 사령선이 보이기도 한다. 사람이 쓰고 있어야 하는 헬멧 안에는 각기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주인공 잠수부는 친구와 동행하며 고장이 난 등대를 뒤로 하수관 안으로 걸어가기도, 알 수 없는 다른 공간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엉뚱한 상상의 타래
머리 아파 제쳐둔 현실을 외면하고자 하는 충동은 유희적이고 즉흥적인 방식의 작업으로 해소한다. 웹에서 수집한 저해상도의 흑백사진과 바로 어제 촬영한 고해상도의 풍경 사진을 모순적으로 병치한다. 목가적 풍경에 고대 유적의 잔해를 재현해내듯,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여러 이미지를 조합한 후 각자의 의미를 재구성한다. 직관적인 취향과 선택으로 만들어 나가는 세계에서 현재와 동떨어진 상상의 타래를 풀어내며, 본인만의 픽처레스크 미학을 형성한다. 같은 시공간에 공존할 수 없는 이미지들을 한데 모아 동시대에 일어나지 않을 상황을 만화처럼 표현하면서 의미에 해석을 덧붙인 짤막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의문을 뒤로한 채, 그들은 발걸음을 내디뎠다.

저 너머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현실 속 유토피아로
작품 외적으로 나는 이야기의 창조자이자, 어쩌면 앞으로의 험난한 여정을 헤쳐 나가야 하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막연한 불안함을 마주하는 본인을 비롯한 동시대 청년들을 자유롭게 꾸미는 상상의 콜라주 세계에 초대하며, 골치 아픈 문제에서 벗어나 일시적인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본인의 작품세계가 보는 이들에게 현실화된 유토피아인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적 공간으로 기능하기를 전망한다.